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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미국의 흑역사, 금주법(feat. 위대한 개츠비)

안녕하십니까, 취남입니다.

제가 코로나로 인한 영업제한때, 항상 하던 말이 있습니다.
"이건 21세기 한국식 금주법이다."

술집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집에서 술을 마시며, 몰래 영업을 하는 술집들이 생기고, 규제로 인해 한 업계가 몰락하는 것 까지.
오늘 알아 볼 미국의 금주법시대와 닮은 점이 많았습니다.
위스키 알아보기에서 잠시 설명 드렸던 금주법, 오늘은 미국의 금주법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봅시다.

 


술을 못 마시는 자유의 나라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역사적으로 금주령이 있던 경우는 많습니다.
대부분의 이유는, 사람 먹을 곡식도 부족한데 이걸로 술을 만들어 마시고, 취해서 일을 안한다~라는 이유죠.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먹을게 넘쳐나고 경제적으로 호황인 시대에 금주법이 시행됩니다.

미국은 뭐든지 크다는 말이 있죠. 술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800년대의 미국은 말 그대로 술에 절어있는 나라였습니다.
전 세계에서 밀려오는 이민자들로 이뤄진 큰 시장, 축복받은 기후와 대지로 인해 곡식과 사탕수수는 넘쳐났습니다.

이것으로 만든 럼과 버번위스키는 발에 차일 정도로 생산량이 많았고, 당시엔 우유나 맥주보다도 쌌다고 합니다.

1900년대에 들어와서도 미국인들은 술을 사랑했고, 이는 사회적 문제도 많이 일으켰습니다.
숙취로 인한 결근, 술로 인한 가정 내 불화, 주폭, 범죄 등의 알콜로 인한 사회적 문제요.
술에 취한 남편이 가정폭력을 휘두르고, 노동자들은 숙취로 월요일마다 회사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여성들과 종교계를 중심으로 금주운동이 일어났고, 페미니즘의 시초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금주운동이 여성인권 운동과 결을 함께했다는 점도 놀랍습니다.


이 운동은 결근에 시달리던 자본가들도 동참했고
아일랜드와 독일 이민자들이 대부분 주류업에 종사했기에, 타민족을 혐오하는 보수주의자들도 이에 동참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미국에서 독일인에 대한 혐오가 피어오르던 때 입니다.
맥주를 유통하는 독일인들의 자본을 끊어버리겠다는 생각으로 금주법에 방아쇠가 당겨집니다.
결국 1919년,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함과 동시에
0.5%이상 알콜의 제조,유통,판매 전부를 금지하는 '수정헌법 18조'가 통과됩니다.


광란의 시대


1920년대의 미국은, 유래없는 경제호황을 겪으며 유럽을 앞지르는 국가였습니다.
이 시기를 으르렁거리는 시대, 광란의 시대 정도로 부릅니다.
시대적인 요인을 타서 주식, 부동산으로 미국인들은 큰 돈을 만지게 되었습니다.

불로소득이기에 시간이 넘쳤고
골프, 테니스, 승마, 폴로 등으로 시간을 보내며,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도 살아가는 부자들이 많았어요.
특히, 시간이 넘쳐나기에 여행상품이 크게 늘었고
몇달동안 유럽으로 가 흥청망청 놀고 오는 여행을 즐기게 됩니다.
이 때 유럽의 부자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동경하는 미국인들이 많았고
이러한 시대상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한 소설이자 영화 '위대한 개츠비'가 있습니다.

영화를 안 본 사람이라도 아는 위대한 개츠비의 그 장면

왜 갑자기 다른얘기로 빠진지에 대한 이유가 이 영화에 있습니다.
온갖 술이 모두 나와 마시고 취하는 이 영화,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금주법이 가져온 사회적 변화


인터스텔라에 그런 대사가 있죠. "우리는 을 찾을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금주법시대는 술을 마실 수 없지만, 누구나 취해있는 시대였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듯이, 부자들은 배를 타고 미국을 벗어나 술을 진탕마시고 돌아가는 여행상품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홈파티를 아주 거하게 열어 마시고 취하기도 했죠.
소설에 나오는 개츠비는 '약국'으로 큰 돈을 만졌습니다.
왜냐, 당시엔 위스키가 의료용 알콜로 둔갑해 팔리는 경우가 있었고
브랜디를 '혈류가 잘 돌게 만들어주는 '으로 썼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약국을 찾아가 술을 샀습니다.

아일라위스키 '라프로익' 마셔보면 왜 위스키가 의료용으로 팔렸는지 알 수 있다.

또,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싶어 교회로 갔습니다.
성찬식에 쓰이는 포도주는 합법이었거든요.
어떤 회사에서 인기상품인 '포도블록'은 주의문구에 이렇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절대 효모를 넣어 상온보관하지 마시오."
사람들은 자꾸 '실수'로 효모를 넣어 상온보관해 와인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골목에선 밀주제조가 성행하고, 술집들은 문을 닫았지만 비허가된 상점으로 '스피크 이지' 바가 생겼습니다.
목소리를 낮춰야 하고, 암호를 대고 입장하는 이 술집은 들어보신 분들이 있을겁니다.
현대에도 이 컨셉으로 운영되는 바들이 있거든요.

금주법과 이 스피크이지 바로 인해 미국 사회의 문화적인 변화가 많았습니다.
원래 술집은 남자와 여자, 흑인과 백인이 가는 술집이 달랐습니다.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받음과 동시에
모두가 술을 찾아 비밀스런 이 곳으로 오니, 남녀흑백이 모두 어우러지게 되었습니다.
남부 흑인들의 음악 '재즈'가 유행한 맥락도 비슷합니다.

금주법 시대가 만들어낸 최고의 스타 '루이 암스트롱'



불법문화인 스피크이지가 대통합을 만들어낸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마실 들을 어떻게 구했을까요?


알 카포네


술 자체가 불법이 되니, 이것을 유통시키는 것은 검은 손과 검은 돈이 되겠죠.
술 유통은 들의 전유물이 됩니다.
바로 이 시기에 나폴리출신 촌뜨기 '알 카포네'가 성장해 판을 치기 시작합니다.

부자들에게 술을 유통하며 큰 돈을 번 알 카포네는 뇌물과 협박으로 공직자들을 구워삶았고
백주대낮에 라이벌인 아일랜드갱단을 총으로 쏴죽여도(발렌타인데이 학살로 알려진 유명한 사건)

말 안듣는 주류업자를 총으로 쏴도 입건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시대에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마피아'의 이미지는 대부분 알 카포네에게서 따온 것 입니다.
시가를 물고, 좋은 정장을 입고있는 중년 이탈리아계의 이미지 말이죠.

여담으로, 알 카포네는 자신이 유통하는 밀주의 품질을 철저히 관리하고, 민간인들의 환심을 사려 노력했다고 합니다.
후에 금주법이 폐지될 분위기가 되자, 알 카포네는 밀주업에서 손을 떼고 우유 유통업에 손을 댔다고 합니다.
당시엔 우유가 마차 등으로 유통되며 속도가 현저히 느렸고, 이 과정에서 우유가 상해도 석회등으로 가려 팔았다고 합니다.
공직자들도 낙농업계통의 로비로 입을 다문 상태였고 말이죠.
여기서 알 카포네가 우유 유통업계를 휘어잡으며 밀주업으로 다져진 인프라로 냉장수송과 유통기한 표기의 법제화등
많은 공헌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본인의 사업이 합법화가 되기 위해서, 민간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한 일들입니다.
범죄자는 범죄자지요.


금주법 폐지


이렇게 금주법을 피해 사람들은 계속 취해있고
업계는 몰락하고, 세수는 부족해지고, 검은 돈은 불어가기만 했습니다.

세금으로 들어와야 할 돈들이 갱단에게 그대로 들어가게 됐죠.
사람들은 술을 마시려 향수등에서 알콜을 추출해 마시며 죽는 사람이 속출했습니다.
잉여작물로 술을 만들어 팔던 농부들은 남는 곡식들을 썩히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요.
누구를 위한 법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금주운동을 이끌었던 사업가들은 이것이 경제적인 측면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단걸 깨달았고
정치인들은 이것이 범죄율을 낮추는것에 의미가 없다는걸 깨달았으며
실제로 금주운동을 이끌었던 여성인권운동가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폐지쪽으로 기울자
이 법안을 냈던 공화당이 주춤하는 사이에 루즈벨트가 1호공약으로 금주법 폐지를 외치며 당선되었습니다.

이렇게 1933년 의도는 좋았으나 결과는 참담했던 금주법이 폐지되었으며
입법부에서 통과하는 법의 파급력이 어떠한지, 우리에게 확실한 메세지를 던져주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금주법이 폐지된 것을 기념하며, 합법적으로 술을 마시고 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