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위스키

위스키 알아보기(2) 위스키의 역사와 쉐리, 피트

안녕하십니끼, 취남입니다.
저번 포스팅에선 위스키의 대략적인 정의와 분류를 살펴보았습니다.

2022.08.24 - [위스키] - 위스키 알아보기(1) 위스키의 정의와 분류

 

위스키 알아보기(1) 위스키의 정의와 분류

안녕하십니까, 취남입니다. 몰트 바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위스키를 처음 접해보시는 분들을 종종 뵙니다. 저 또한 그랬기에, 술을 사랑하는 우리를 위해, 하나하나 함께 알아보려 합니다. 영화

ghdrlqor123.tistory.com

위스키의 원조가 어디고 철자가 어떻고 했던 내용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정확하게는 '스카치 위스키의 역사' 정도를 집고 넘어가며
아메리칸 위스키 같은 경우는 할 말이 또 많기에, 따로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생명의 물


전 편에서, 위스키는 곡식으로 만든 발효주를 증류시키고 숙성하여 만든 술 이라고 했죠.
증류 기술이 발달 하기 전, 유럽에서는 와인과 맥주와 같은 발효주만 먹었습니다.
순수한 알코올을 뽑아내는 증류기술은 옛날옛적엔 당연히 없었을 거에요.
증류로 알콜을 뽑아낸 것은 8세기 아랍의 화학자들 이라고 합니다.
와인을 증류시켜 알콜을 추출한 아랍 화학자는 여성들의 화장품을 뜻하는 단어인 알쿠훌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12세기 경, 십자군 전쟁 전후로 이슬람의 발달 된 증류기술이 유럽 전역으로 들어가며 대중화 됩니다.

세균과 같은 의학적인 지식이 당연히 없던 당시엔, 싸우거나 일을 하다 다치면 소독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상처 부위가 곪아 환부를 절단하거나, 사람이 죽는 일이 너무 많았어요.  현대의학에, 오늘도, 감사
그런데, 이 증류주를 상처에 바르니, 상처가 곪지도 않고 낫는겁니다. 당시 사람들은 너무너무 신기했겠죠.
세균과 소독에 대한 개념이 없으니, 이 신비한 액체를 하느님의 축복 정도로 생각하고
라틴어로 생명의 물, 아쿠아 비테(aqua vitae)라 불렀습니다.
이 생명의 물이 고대 게일어로 우스개-바하 입니다 저번 포스팅에서 말씀 드렸었죠.

당시에 먹고 남은 곡식으로 술을, 그것도 증류주를 만들 정도로 경제력이 뛰어나고, 그만한 화학기술을 가진건 막강한 교황의 아래에 있는
수도원 정도였죠. 이 생명의 물은 하느님의 축복이기에, 교황이 지정한 수도원에서만 만들었다고 합니다.
추후 16세기 즈음에 영국 가톨릭 수도원들이 문을 닫으면서, 증류기술자인 수도사들이 민간으로 흩어져 기술이 퍼졌고
농민들이 먹고남은 곡식으로 아쿠아비테를 만들며 민간 증류소가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스코틀랜드에 정착된 우스개 바하는, 먹고 남은 보리를 이용한 농민들의 부업 수단이었고
이게 인기를 끌자 본격적으로 위스키를 만드는 증류업자들이 많아졌습니다.
술도 마시고, 돈도 벌고, 농부들은 행복하게 잘 살줄 알았지만..

 

 


세금과의 전쟁, 밀주


전 세계적으로 술은 국가적 문제 이기도 했습니다.


흉년이 들면 먹을 곡식도 부족한데, 이걸로 술을, 그것도 증류주를 만들다니요.
또한 술은 알콜중독과 주폭, 근무태만, 폭동 등 사회적으로 큰 문제들을 가져왔습니다.
이에 대해 여러 나라에선 주세와 금주법등, 술에 대한 규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술은 인간의 친구이기에, 이를 피해 사람들은 '밀주'를 만들었습니다.


위스키의 경우엔 '밀주에서 나온 술'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일랜드를 지배하던 잉글랜드는 1580년 아쿠아비테(위스키) 업자에게 압박을 넣으며 허가증을 만들고
원료인 맥아에 '몰트세'를 부과합니다.

이후 잉글랜드가 1707년 스코틀랜드를 통합시키며 당시 스코틀랜드의 부채를 짊어지게 됩니다.

부족한 재정을 채우기 위해, 스코틀랜드에도 1713년  '몰트세'를 부과합니다.

세금이 너무 과하니, 위스키로 재미를 보던 증류기술자들은 반발하여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고
다른 재료를 섞어서 만들기도 했으며

산속으로 들어가 밀주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세관원들의 눈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 달빛 아래에서 밀주를 만들었다 해서
밀주를 문샤인, 밀주업자를 문 샤이너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또한, 지금 스카치 위스키 증류소의 이름중에, 글렌(Glen)이라는 이름이 많습니다.
글렌피딕, 글렌리벳, 글렌버기 등등등
글렌은 게일어로 협곡, 계곡 정도의 의미가 있어요.
위스키를 만들 때, 대량의 물이 들어가기에 수원지를 찾아 산속 계곡에서 물을 가져온거죠.


피트와 쉐리, 뜻 밖의 발견


햇빛이 들지 않는 산 속에서 보리를 말리기 위해, 업자들은 주변에서 보기 쉬운 피트(이탄, 토탄)을 사용해 보리를 말렸습니다.
맞습니다. 아일라 위스키로 대표되는 피트위스키는 여기서 시작이 됐어요.

이탄(토탄)이라고도 부르는 피트

습기가 많은 지역에서 퇴적층이 만들어져 생긴 피트는 특유의 향취가 있어서, 이것으로 보리를 말리니 그 향이 배어들었고
이 보리로 만든 위스키는 현재도 많은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는 위스키가 되었습니다.

또, 만든 밀주를 몰래 보관 할 용기가 필요했던 업자들은, 와인을 숙성시키 위해 만든 오크통에 술을 담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당시에 합법이었던 쉐리와인.
스페인에서 쉐리와인을 수입, 운반하기 위해 썼던 오크통을 가져와 밀주를 담습니다.
그 큰 면적의 오크통들을 스페인에서 다시 가져가기 힘들기 때문에, 영국에 두고 떠난 것이죠.

스페인에서 영국까지 오랜 시간을 배로 운반하며, 쉐리와인은 오크통에 배어들었고
이 오크통에 밀주를 장기간 보관했다가 나중에 열어보니, 눅진한 쉐리의 과 오크의 향을 가진 멋진 술이 되었습니다.

이전의 밀주들은 증류한 그대로의 투명한 술인데, 오크통에서의 숙성을 거치며 우리가 아는 의 위스키가 되었죠.

뭐, 사실 우리가 지금 마시는 쉐리위스키는, 이 때의 쉐리위스키가 아니긴 합니다.

그건 다음 포스팅에서 캐스크에 대해 다루며 같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위스키의 대중화


밀주가 너무 성행하고, 밀주업자들과 그걸 잡으려는 세관원들의 전쟁이 계속되니
이를 양지에 끌어올리려 1823년, 소규모 증류소에서 저렴한 세금으로 위스키를 만들 수 있도록 조세법을 추진합니다.

조세법이 통과되자 많은 밀주업자들이 허가를 받기 시작했는데, 최초로 허가를 받은 증류소가 바로 글렌리벳 입니다.

밀주에서 시작한 위스키가 어떻게 대중화 됐느냐 하면
필록세라에 의한 와인, 브랜디 시장의 몰락이 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영국의 상류층들은 와인과 브랜디를 즐겨마셨는데, 이 술을 만들기 위한 유럽의 포도나무들이 19세기 '필록세라'의 공격을 받습니다.

 

벌레사진이 혐오감을 줄 수 있어서 귀여운 세균맨으로 대신 하겠습니다.

'흰 가루병' 이라는 포도나무의 병을 막기위해 북미에서 포도나무를 실험용으로 가져왔는데
이 때 북미 포도나무에서 살고있던 필록세라가 유입됐다고 합니다.
잎과 뿌리에 달라붙어 진액을 빨아먹으며, 나무를 약화시키는 필록세라에 대한 내성이 유럽 종에는 없었어요.
미친듯한 번식속도를 자랑하며 유럽 전역의 포도나무를 파괴시키자, 와인과 브랜디 시장은 황폐화되고
이에 대한 대체재로 위스키가 떠오릅니다.


위스키 포스팅에선 이 사건을 이정도만 다루지만, 주류 역사에 정말 큰 영향을 준 사건이기에
추후에 다시한번 포스팅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